2016년 3월6일(봄이 오긴 오나보다)-길,저쪽-정찬
정찬의 길,저쪽 2015년 (주)창비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하고 울컥했다.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우리나라의 또다른 암흑기에 살고 있던 몇몇 젊은 청춘들의 이야기가 낱낱이 파헤쳐지고 있다. 이 시기는 젊은 학생이나 뜻있는 지사들이 유신정권과 독재정권에 반대하다 투옥되는 일이 허다하게 벌어지고 있는 시기로 1인칭 나(책의 말미에 나의 이름은 윤성민이라고 밝혀진다)의 친구인 김선일은 1975년 2월15일 영등포교도소에서 형집행정지로 풀려나는 날이다. 이날은 김지하씨와 백기완씨가 출감하는 날이기도 했다. 교도소 앞에는 구속자의 가족들과 기자들로 꽉차있었다. 1인칭 나와 김선일은 김지하씨가 출감되고 백기완씨의 출감을 기다리는 데 국민투표법 위반으로 선고받은 벌금10만원때문에 풀려나지 못하고 있었다. 모여있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금을 하였으나 남아있는 사람들이 적어 수월하지 않았다는데 어느새 다가온 아기업은 아줌마가 만원짜리 몇장을 주면서 보태라고 했다. 김선일의 설명으로 그 분이 김지하의 장모 박경리여사였음을 1인칭 나는 깨닫는다. 이 장면은 내가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에서 읽었던 내용과 겹친다. 작가 김훈은 자신이 기자였을 때 취재를 위해 영등포형무소앞에서 출감하는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둔덕위에서 아이를 업고 있는 박경리작가를 뛰어난 그의 관찰력으로 알아본 내용을 적었는데 이 책에서는 주인공이 박경리작가가 건네준 만원짜리 몇장과 재회하고 있었다. 같은 장소에 1인칭 주인공인 나와 김훈은 다른 볼일로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내가 이부분을 이렇게 길게 적고 있다니 내가 느낀 중요한 것은 이것보다 희우에 대한 아픔이다. 그당시 윤성민은 김선일 일로 수배되어 조사를 빙자한 고문을 당하고 있었고, 희우는 단지 윤성민을 만나고 알고 있다는 죄로 학교앞에서 사복경찰에 연행되어 지하세계에 갇힌다. 희우의 편지에서 들어난 그날의 지하세계에서 벌어진 인간이기를 거부한 일은 같은 여자로서 치욕스럽고 혐오스럽다. 이 때는 그들의 무력이 법이며 신이었다. 같은 나라 같은 한민족이라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같은 민족에게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함(원래 인간은 잔인한 것 같다)을 보여주는데 이는 일제시대 일본인의 고문기술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같은 민족에게서도 드러나는 잔인함은 다른 나라 다른 민족에게서 드러나는 잔인함은 상상을 초월하지 않을까 싶다. 갑자기 열흘 전에 본 <귀향>이 생각났다. 나라를 빼앗긴 일제시대 우리의 어린 딸들이 강제로 끌려가거나 혹은 어려운 집안에 도움을 주고자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되어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곳에 위안부로 배치되어 얼마나 많은 치욕과 능욕을 당하였던가. 그러다못해 병들고 아프면 가차없이 죽여버리고 시체가 쌓인 웅덩이는 불살라 그 영혼마저 죽이고자 했다.
다시 희우에게로 돌아가자. 희우는 1인칭인 나, 성민에게 말도없이 프랑스로 떠나 27년만에 성민과 재회한다. 그녀의 옆에는 딸 영서가 있다. 영서는 지하세계에서 모진 고문 속에서 겪었던 죽이고 싶었던 생명체였다. 그녀가 프랑스에서 그나마 성공한 삶을 살았던 일은 그녀의 편지로 드러난다. 잊지못하고 다시 찾은 성민에게 그녀는 난소암에 걸린 환자였다. 성민은 윤하와의 만남에서도 무의식중에 잊지못하고 있던 희우를 만나고 희우도 27년 동안 잊지 못한 성민과의 재회가 희우가 아픔으로써 이루어졌다는 것이 또한 마음이 아프다. 그들은 성민이 사진작가로 찍은 폐사지를 둘러보기도 하고 김선일의 혼과 함께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현수의 엄마 차혜림의 집에 거주하면서 위로를 받기도 한다. 결국 희우는 지리산 차혜림의 집에서 숨을 거둔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마음을 울렁거리게 한다. ......
*처음 표지를 봤을 때 중세기의 감옥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책을 읽다보면 주인공인 윤성민과 그를 사랑한 연인, 윤하와 희우가 좋아했던 르또로네수도원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문 안쪽은 어둡지만 그 어둠은 바깥의 밝음이 있기에 더욱 그늘져 보일 수도 있다.